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칸센 0계 전동차 (문단 편집) == 개요 == || [youtube(2kMMW1AEjXw)] || || '''0계의 완전 종운식'''[br]('''2008년 12월 14일 촬영''') || || [youtube(AejvwP2sxzo)] || || [youtube(Qyb0QK6HTeQ)] || || 2000년대 운행 당시의 영상 || || [youtube(N0NOMnoy-JY)] || || 2008년 12월 퇴역이 가까워지는 운행 당시 [[신야마구치역]] 통과 영상.[br]임시 운행 중이었는데, 무려 '''[[히카리(열차)|히카리]] 등급으로 뛰고 있다.'''[* 게다가 바로 옆에 있는 [[신칸센 500계 전동차|500계]]를 추월해버리는 건 덤. --형 왔다-- ] || || [youtube(yGpWNSZNAyA)] || || 신칸센 0계 개발 및 제작 영상 || [[일본국유철도]], 민영화 이후에는 [[JR 도카이]]와 [[JR 서일본]]이 운행했던 [[도카이도 신칸센]], [[산요 신칸센]] 열차. '''[[세계 최초/외국의 경우#s-2.5|세계 최초]]의 상용 [[고속철도]] [[전동차]]이다.''' 별다른 기술의 진보와 후계 차량의 개발 없이 100계가 개발된 1985년(최후기 차량은 1986년 생산분)까지, 약 20여 년간 붕어빵 찍어내듯이 모자라면 새로 만들고, 낡으면 폐차시키고, 똑같은 걸 또 찍어내기를 반복했다.[* 1964년에 생산된 초기 차량은 '''1976년부터''' 폐차되었다. 해당 차량들의 대차분은 당연히 0계(...).] 일본이 한창 잘나갔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 중 하나로, 일명 '''꿈의 초특급(夢の超特急)'''이라고 불린다. 그래서인지 신칸센 0계 전동차가 퇴역하기 두 달 전인 2008년 10월 13일. 유튜브에 이 차량의 퇴역을 기리는 노래[[http://youtu.be/iOCSj9dBv9Y|#]][* [[바바 토시히데]](馬場 俊英)의 그대가 가져다 준 미래(君がくれた未来)라는 노래로, 0계의 은퇴를 기념하며 헌정된 노래라고... 참고로 바바 토시히데라는 사람도 중증 철덕으로 유명한 사람이다.]가 뮤직비디오로 업로드되기까지 했다. 은퇴를 기념하면서 Google은 메인 홈페이지에 0계 일러스트를 올렸으며, 마지막 운행 날에는 모든 일본 철도차량 중 유일하게 [[전설|경례를 받고 떠났으며]], 은퇴 다음 날에는 일본 메이저 신문 일간지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단한 차량. 총 '''38차차'''까지 생산되었으며 그만큼 엄청난 양의 가지치기 모델이 존재한다.(...) 1964년 [[신칸센]] 첫 개통 때 [[코다마(열차)|코다마]], [[히카리(열차)|히카리]] 등급으로 처음 등장하였는데, 이는 [[TGV]]보다도 더 빨리 나온 열차이다. 따라서 자연스레 본 차량은 세계 최초의 상업운전용 고속열차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고, 그 덕분에 뭔가 거창하고 오버테크놀러지스러운 기술로 무장했을 것 같지만, 사실 [[21형 유보트|기존의 전동차 방식을 적절하게 응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는 전동차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정말 단순한 발상에서 개발이 시작된 차량이다. 오늘날에는 시속 300~320km/h급의 열차가 상업운전을 하고 있고, [[코레일 368000호대 전동차|180km/h급의 전동차]]도 [[전라선|230km/h급 선로도]] 일반철도 취급을 받는 상황과 비교해 보면 그다지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등장 당시에는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빠른 속력이었으며 "탄환열차"라는 별명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사실 탄환열차란 명칭과 개념 자체가 등장한 게 1930년대말이니 이 때를 기준으로는 정말 꿈의 속도라고 부를 수밖에 없으며(증기기관차 [[LNER A4]] 맬러드가 겨우 200km/h 벽을 넘었다), 0계가 처음 등장한 1964년이라고 해도 (비록 끝물중의 끝물이었지만) 구식 '''증기기관차'''가 아직 현역으로 다니던 때였다. 이런 때 최고 속력 210km/h의 전동차가 실제로 등장한 것이니 가히 혁명일 수밖에 없다. 한편 증기기관차는 대부분 1970년대에 다 은퇴했다.] 하지만 이후 철도차량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 제작되는 차들의 설계최고속도・영업최고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기 시작하자 210km/h의 속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되었고, 그 결과 1986년에 개조[* 트랜스 폰더를 사용하여 ATC를 225km/h까지 올리고 185kW급 전동기를 '''225kW'''급 전동기로 교체하는 것]를 통해 영업최고속도를 220km/h까지 올렸다. 주행시험에서는 250km/h까지 밟은 적이 있다고 한다.[* 시험편성 B편성이 256km를 달성, 리니어 철도관에 당시 차량에 달고 다니던 속도기록명판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한계가 있어서 0계의 후속 차량인 [[신칸센 100계 전동차|100계]], 그리고 앞의 두 차량에 비해 최고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된 [[신칸센 300계 전동차|300계]]의 등장으로 인해 일찌감치 도카이도 신칸센에서 은퇴했고, 1998년 이후부터는 산요 신칸센에서 6, 4량짜리가 투입되면서[* 6량짜리는 R편성, 4량짜리는 Q편성이라고 부른다.] 코다마 등급을 달렸다. 또한 차량수명 문제[* 최초 생산분은 등장한 지 '''15년이 지나지 않아''' 폐차가 이뤄졌다!대략 1974~1979 사이에 퇴역. 그리고 더 웃긴 건, 폐차한 0계의 빈 자리는 새 0계를 찍어내서 대체했다는 것. 아무리 최근에 만들어졌어도 '''1986년'''에 만들어졌다. 신칸센 차량의 수명이 13~20년 정도이니까 오랫동안 사용한 것이다. 당시 일본 국철의 노사분규 때문에 신차 개발이 지연되었다. 80년대 중반까지 100계가 나올 때까지 즉 20년 동안 0계를 계속 만들어서 대체한 것이다.]와 더불어 210~220km/h라는 낮은 최고속도로 인해 이후 등장한 285~300km/h급 고속차량들의 다이어에 악영향을 끼치는 점 등이 지적되면서 마지막까지 본 차량을 보유하고 있던 JR 서일본마저도 2008년 11월 30일 정기운용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정했고, 동년 12월 14일 히카리 등급[* 하카타행(18:01 도착) 히카리 347호(9347A) 정차역 : 신오사카, 오카야마, 히로시마, 코쿠라, 하카타]으로 운행을 종료했다. 비록 현업에서는 완전히 은퇴하고 차적에서도 삭제되었지만 상당수의 차량이 일본 곳곳의 박물관 등에 정태보존되어 있으며, 특별히 2량이 해외에 양도되었는데 1량은 본 차량이 철도사에 남긴 족적과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저 멀리 [[영국 국립철도박물관]]에 기증되었고,[* 우메코지 증기기관차관의 자매결연에 의해 JR 서일본에서 기증됨, 전시된 과정이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나머지 1량은 신칸센을 베이스로 건설된 [[타이완 고속철도]]의 건설한계 검측용 차량으로 양도되어[* 그런 이유로 차체는 온전하지는 않아서, 주요 부분에 레이져 검측장치용 구멍이 있으며 하부에 기기가 없다.] 제2의 생을 살고 있다. 등장 초기에는 꿈의 초특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승무원들이 마치 구 일본군 해군 정복같은 하얀색 정복을 입고 승무했다. 특급의 '초'특급이니만큼 당연히 뷔페칸이 있었고 웨이트리스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이후에는 추가로 식당칸이 생기면서 특급열차다운 면모를 과시했었지만 이후 고속성능을 자랑하는 후배차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장거리 운용에서 배제, 중단구간 히카리 등급 이상의 운행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그 결과 식당칸과 뷔페칸은 현재 한국의 일부 열차편의 카페열차처럼 개점휴업 상태로 입석이나 자유석 고객 처리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최후의 개점휴업 식당차(...)는 2008년 3월까지 편성편입되어 운행했다고 한다. 근데 그 차량은 다목적실로 개조된 차량이라 진정한 식당차량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이러한 시설들은 당시 기준에서는 최신식 설비가 도입되었으나, 오늘날 남아있는 사진들을 보면 상당히 레트로풍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지는 편이다. 또한 이 식당칸에는 속도계가 달려있었는데, 당시에는 승객들의 상당한 관심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속도계는 교토철도박물관에 전시 중인 0계 1번 편성의 뷔페칸 차량에서 볼 수 있다.] --[[KTX]]도 개통 직후에는 객실내 모니터에 300km/h 뜨는거 다들 쳐다보고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인 셈인가...-- 초기형은 승객석 창문이 폭 1,460mm(그린샤 1,870mm)의 광폭형 창문이 장착되었다. 그러나 [[세키가하라초]] 인근의 설해때문에 창문이 파손되는 경우가 잦았고, 파손 방지 및 설사 파손되더라도 교환비용을 줄이기 위해 1000번대에서는 창문의 폭이 630mm(그린샤 850mm)로 크게 좁아져 승객석 한칸당 하나의 창문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좁아져 바깥의 풍경을 보는 것이 어렵다는 민원이 빗발쳤고[* 당시 신칸센은 차창의 풍경 또한 마케팅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바깥 풍경을 보기 어렵다는 건 꽤나 큰 단점이었다.] 결국 2000번대에서는 약간 개선되어 창문 폭이 720mm(그린샤 900mm)로 넓어진다. [[산요 신칸센]]에서의 마지막 운행 때, [[철도 동호인]]도 많이 왔지만, 되려 철도 동호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상당수 왔을 정도로, '''국민 열차'''로서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임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였다. 한국으로 치면 구형 [[새마을호]] 열차 정도의 대중 인식으로 보인다.[* 실제로 종운식 문화가 자리잡지 않은 한국에서도 구형 새마을호의 종운식만큼은 일반인들도 많이 모여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후에 0계보다 기술이 진보된 열차인 [[신칸센 100계 전동차|100계]], [[신칸센 300계 전동차|300계]], [[신칸센 500계 전동차|500계]], [[신칸센 700계 전동차|700계]] 등이 등장했지만 모두 하나같이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 보니 감히 0계의 상징적인 자리를 넘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후 0계의 왕좌는 [[신칸센 N700계 전동차|N700계]]가 물려받은 격이 되었다. 그 이유는 N700계가 300계의 16량 1323석 규격과 500계의 최고속도 300km/h와 700계의 높은 효율성 등 JR 도카이가 그동안 염원해온 모든 스펙을 갖춘 첫번째 열차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카이도-산요 신칸센 차량의 계보를 확인해보면 1964년에 0계가 출시된 이래 신차로 갈아타지 않은 채 '''21년'''이나 우려먹다 1985년에 100계, 7년 후인 1992년에 300계, 5년 후인 1997년에 500계, 2년 후인 1999년에 700계, 8년 후인 2007년에 N700계가 출시된 후 별다른 신조 차량의 출시 없이 자잘한 개량형 정도만 내놓으며 '''13년'''이나 우려먹다 2020년에 [[페이스리프트|F/L]] 차량인 [[신칸센 N700S계 전동차|N700S계]]를 출시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2008년 12월 14일에 신오사카발 하카타행 히카리 347호로 마지막 운행을 하였다. 도중정차역은 신오사카-오카야마-히로시마-코쿠라-하카타였으며, 신코베를 통과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